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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1월 0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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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중심을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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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중심을 지키십시오! (빌 1:20)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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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은 챔버스의 아내 비디가(Beloved Disciple는 챔버스가 아내를 부르는 애칭) 남편의 글을 모아 출판한 책입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최상의 하나님께 당신의 최선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최고봉’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그의 책 「죄의 철학」에서 “성도의 저주는 성도의 선행이다”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선한 행위가 어떻게 성도의 저주가 될까요?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모든 외적인 선한 행위들이 영적으로는 생명 되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데 방해가 되는, 생명 없는 죽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죽은 행실’이라 부릅니다. 영적으로 죽은 행실은 성도인 우리를 실제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1. 최상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림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최선을 드리는 것은 논쟁을 하거나 이치를 따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의 항복입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의지의 항복을 가로막습니다.”
이치와 논쟁을 따지는 우리는 종종 이런 핑계를 댑니다. 우리의 순종이 남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또한 불평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생각하십시오. “최상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리리라!” 단호하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그분을 위해, 오직 그분을 위해 살기로. 주님이 나의 최고가 되는 것은 논증과 이해가 아닌 ‘의지’의 문제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빌 1:20).” 사도바울은 주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기 위해 아무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챔버스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묵상하며 고민했습니다. “최상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릴 수 없을까?” 그렇게 그는 43년의 삶을 주님께 최선을 다해 드렸습니다.

2. 주님의 거룩을 위해, 나는 아무것도 주저하지 않음

최상의 주님께 우리의 최고를 드리기 위해서는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방해하도록 놔둬서는 안 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 이런 최선의 삶은 우리 삶의 위기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드럽게 다루시면 우리는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위기를 가져오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의 것을 주께 전부 드리는 자리까지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기로 이끄시는 때는 ‘결정의 순간’입니다. 주님을 위할 것인지, 주님을 대적할 것인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챔버스는 이를 ‘가장 큰 분기점’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기가 찾아올 때 의지를 번복할 수 없도록 주님께 완전히 항복해야 합니다.하나님이 위기를 조성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 주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성도에게 ‘축복’입니다.

“때로 어려움을 겪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유익합니다. 고난과 십자가는 흔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이 나그네이며 세상 그 무엇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그리스도를 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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